본문 바로가기

전시안내

전시 1

  • 주제 : 명동싸롱과 1950년대 카메라당
  • 기간 : 2019.10.1(화) ~ 2019.11.10(일)
  • 장소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 1, 2

1950년대 사진계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해방공간의 혼란과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파괴된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사진가들은 일제가 구축해놓은 사진제도의 틀을 깨고 새로운 사진제도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조선총독부와 관변단체에 의해 제도화된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이 해방 이후 좌익 계열 사진가들에게, 한국전쟁 이후 리얼리즘 계열의 사진가들에게 공격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해방 전 예술사진의 양식과 내용을 사진적 전통으로 삼고 이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사진가들과, 그것을 ‘살롱사진’이라 부르며 비판에 나선 리얼리즘 계열의 사진가들 사이에서 격렬한 사진예술 논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물론 각각의 입장들이 이론적으로 정치하게 정리되지는 못했지만, 1950년대는 보수파와 혁신파(급진파)가 서로 논쟁과 대결을 벌이면서 사진에 대한 각자의 이념과 미학적 태도를 견지하려고 노력했던 첫 시대였다. 이러한 사진 논쟁은 사진담론 형성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는데, 진영은 바뀌었지만 1990년대 초중반 모더니즘 계열의 사진가들과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사진가들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재현되었다. 당시 논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모더니즘 진영에서는 자신들의 사진이론인 ‘스트레이트 포토그라피(straight photography)론’을 정식화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 이론의 사상적 기원을 1950년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1950년대는 한국사진사에서 근대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하나의 분기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사진계 내에서 사진제도를 둘러싼 경쟁과 대립 그리고 다양한 실천들이 전개됐던 것과 별도로, 사진계 밖에서도 사진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학술적 쓰임과 역할과 관련해서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났다. 10년간 일어난 사진 현상들을 모두 수집하여 제한된 전시 공간 안에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관련 기관, 업체, 단체들이 모여 있던 ‘명동’을 공간적 범위로 하여 당시 상황을 엿보고자 한다

참여작가 : 성두경, 이경모, 이형록, 임응식, 임인식, 한영수

제1부 명동의 사진 공간

명동이 갖는 상징성과 이곳이 어느 지역보다도 활발한 사진 활동이 이루어졌던 공간이라는 점에서, 명동과 그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1950년대 한국사진의 지형을 그려보고자 한다. 사진제도 안팎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진 현상들과 이슈들을 다루기에는 그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1955년과 1961년에 제작된 명동지도를 매개로 그 지도 속에 표시된 사진 관련 기관, 업체, 단체, 전시 공간 등을 찾아 6개의 키워드로 분류하여 구성했다. 또한 명동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 각각의 키워드가 지닌 사진사적 의미를 공시적, 통시적으로 살펴보았다.

  • 섹션1. 폐허

    섹션1. 폐허
    1950년대 한국사진은 전쟁사진이 그 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적으로 변모해온 서울의 도시 공간, 그중에서도 특히 명동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는데, 이 섹션에서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명동의 기록사진들을 모았다.
    성두경, 이경모, 임인식, 임응식 등 네 명의 사진가들이 촬영한 사진을 통해 명동이라는 공간이 전쟁에 의해 강제적, 물리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네 명을 포함해 많은 사진가들이 한국전쟁 당시 다양한 경로로 종군하며 전쟁을 기록했다. 대표적으로는 정훈국 보도과 사진대에 문관의 신분으로 참여하여 종군했으며, 각 부대별로 종군한 사진가들도 많았다.
    그 외에 미 국무성 소속으로 참여하거나 사진기자 신분으로 종군한 사진가들도 있었다. 소속별로 종군사진가들을 구성했는데, 그들의 종군 경로와 지역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작품보기 +
  • 섹션2. 물질

    섹션2. 물질
    명동 일대에는 일찍부터 사진관과 사진재료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주로 일본인이 운영했던 이 업체들은 해방 이후 한국인이 적산으로 불하받아 운영을 이어갔다. 한국전쟁기에는 동화백화점 (현 신세계백화점)이 미군 PX로 사용되면서, 명동과 충무로로 모여드는 미군들을 상대로 한 사진관과 사진재료상들이 급증하게 되었다. 더욱이 1953년 환도 이후 주요 사진단체와 사진잡지사 등이 이곳에 사무실을 열자, 이를 중심으로 사진가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모여든 사진가들은 필요한 장비와 재료를 구하기 위해 사진재료상을 찾았는데, 자연스럽게 이곳은 사진에 대한 정보나 의견을 교환하는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명동은 이렇게 사진인들의 메카가 되었다.

    이 섹션에서는 1955년 제작된 『서울상계약도』와 사진잡지에 게재된 광고이미지, 그리고 실물 자료들을 통해 1950년대의 사진관과 사진재료상을 만나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사진사 연구의 공백으로 남아 있는 물질문화 연구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작품보기 +
  • 섹션3. 소비되는 이미지

    섹션3. 소비되는 이미지
    1950년대 들어 사진 이미지의 대중적 소비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우선 국가권력 차원에서 사진의 정치적 활용을 위해 관제 사진을 대량 생산하여 국민들에게 유통시켰다. 이승만 정권은 이미 1948년 11월 문교부가 주최한 『여수순천반란지구 현지사진보도전람회』(화신백화점 화랑, 2주간의 전시기간 동안 12만여 명 관람)를 통해 선전 매체로서의 사진의 효용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와중에도 정부와 군 당국에서는 다수의 전쟁기록사진전을 개최했으며, 종전 이후에는 전후 복구 과정과 반공자유주의 이념을 국내외적으로 소개·홍보하기 위해 다양한 사진책자들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진들은 정부 산하의 공보처(공보실) 사진부에서 직접 생산하기도 했지만, 급증하는 사진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설립된 사진 전문 통신사들에서 제공받기도 했다.

    한편 정부의 문화재정책 및 관광산업정책에 따라 해당 분야의 사진이미지가 필요해지자, 사진계에서도 이에 부응하여 한국사진작가단을 필두로 많은 사진가들이 문화재사진과 관광사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예술 및 보도 영역에 머물러 있던 사진의 역할과 기능이 확장되기 시작한 것인데, 바로 1950년대는 상업사진으로 그 외연이 넓혀졌던 시대였다.

    민간차원의 상업사진은 1950년대 발행된 대중잡지의 표지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잡지 표지가 회화나 일러스트에서 사진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통해 사진이미지의 대중적 소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화보집과 대중잡지 등에 수록된 인쇄사진을 중심으로, 당시에 활동했던 상업사진가들을 새롭게 발굴·조명하여 한국상업사진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작품보기 +
  • 섹션4. 사진계

    섹션4. 사진계
    한국전쟁 이후 명동으로 몰려든 사진가들은 사진단체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1946년 서울에서 창립한 대한사진예술가협회(대한사협)와 1952년 부산에서 창립한 한국사진작가협회(한국사협)는 환도 이후 사무실을 모두 명동으로 옮겼는데, 이 두 단체는 1961년해체되기까지 사진계를 대표해온 양대 사진단체였다. 이 섹션에서는 1950년대 사진계의 지형을 사진단체사 연표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대한사협과 한국사협을 두 축으로 사진단체의 계보를 그려보고, 단체간 협력과 경쟁 관계를 다이어그램으로 구성했다.

    연표의 구성 시기는 해방 전후부터 1961년까지로 잡았으며, 계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1945년과 1961년은 분절점으로 표시됐는데, 공히 국가권력에 의해 사진단체가 통폐합되어 사진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즉 1945년은 일제가 사진통제를 위해 관변단체를 앞세워 진행한 일련의 사진단체 통폐합 정책이 완료된 시점이며, 1961년은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국가재건최고회의 포고 제6호로 기존의 사진단체가 해산되고 관변단체인 한국사진협회로 통폐합된 해이다. 한편 해방을 맞자 수많은 사진단체들이 서울과 지방 각지에서 조직되기 시작했다. 또한 해방공간의 사진계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좌익과 우익으로 양분되어 이념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한국전쟁은 사진계의 무게중심을 임시 수도 부산으로 옮기게 했는데, 이곳에서 전국 단위의 대표성을 갖는 사진단체를 모색했던 한국사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환도 이후 서울로 사무실을 옮긴 한국사협은 일제강점기에 결성된 경성백양사우회를 기원으로 하는 대한사협과 사진계에서의 대표성을 두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부에는 좀 더 다양한 이념과 목적성을 띤 다양한 성향의 사진단체들이 출현하면서 사진계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나갔다.

    작품보기 +
  • 섹션5. 전시 공간

    섹션5. 전시 공간
    사진가들의 창작 활동은 주로 전시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사진이 전람회라는 제도를 수용한 것은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되는데, 1920년대까지는 주로 사진관이나 사진재료상, 다방, 공회당, 오복점 그리고 학교 강당과 신문사 강당 등에서 사진전시가 열렸다. 1930년대 들어 백화점들이 등장하고 여기에 화랑이 개설되자, 사진도 회화와 마찬가지로 백화점 화랑에서 전시되었다. 개인전을 비롯한 단체전 및 공모전이 미쓰코시(三越)백화점 화랑, 화신백화점 화랑, 조지야백화점 화랑 등에서 다수 개최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기존의 백화점 화랑 외에도 공보실(공보처)과 미국공보원에서 각각 운영한 공보관과 문화관 등에 전시장이 개설되어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동방사진뉴스사를 운영했던 김동근에 의해 마련된 동방문화회관은 명동에 모인 문인들뿐만 아니라 사진인들의 살롱이었다. 이 섹션에서는 명동에 있었던 동방문화회관을 비롯해 사진가들의 활동 무대인 주요 전시공간과 그곳에서 열린 주요 전시를 살펴본다

    작품보기 +
  • 섹션6. 출판

    섹션6. 출판
    1950년대 사진계의 활동과 담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사진 서적과 잡지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당시 사진 전문 서적은 기술서에 치우쳐 있었고, 이론서로는 김용훈의 『사진의 예술 : 작가로 되는 길』(1959)이 유일하게 확인된다. 사진잡지는 1956년 조명원에 의해 창간한 『사진문화』만이 존재했을 뿐인데, 그나마 이 잡지를 통해 1950년대 후반부 사진계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다행히도 국제보도연맹에서 1950년부터 발행한 『한국화보(Pictorial Korea)』 속에는 사진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포토 살롱(Photo Salon)」란이 있어, 1950년대 전반기의 주요 사진가와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섹션에서는 크게 기관별, 주제별로 사진 관련 도서를 분류하여 구성하였다. 먼저 기관별 구성에서는 한국사진문화사, 국제보도연맹, 동화통신사 등 사진잡지와 사진화보집을 발행한 기관들을 소개하고, 각 기관에서 출판한 도서들을 선보인다. 주제별 구성에서는 ‘사진 전문 서적’(이론서, 기술서)과 ‘문화재 관련 사진도록’, ‘미공보원 발행 대한(對韓) 선전 책자’, ‘해방 및 정부 수립 10주년 기념 사진화보집’ 등을 실물 전시한다.

    작품보기 +

제2부 모더니즘사진의 탄생

한국에서 모더니즘 사진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기를 1950년대로 보고, 형식적인 측면에서 모더니즘적인 경향을 보이는 작품들을 두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첫 번째 섹션은 이미 사진사적 평가를 받은 사진가 네 명의 작품 중 모더니즘 계열의 사진들을 선별 구성했으며, 두 번째 섹션은 모더니즘 사진의 경향이 소수의 사진가들에게서만 나타난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당시에 발행된 사진화보집과 사진잡지에 소개된 작품들을 발굴, 소개한다.

여기에 소개되는 사진가들은 소속 단체도 다르고 사진 이념도 다르지만, 매체의 리얼리티에 주목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더니즘 화가들이 실재의 재현보다는 점, 선, 면, 색, 형 등 그림을 구성하는 회화적 요소에 주목했듯이, 사진적 요소와 기계적 속성을 재발견하였다. 이를 통해 대상성보다는 화면을 구성하는 톤, 프레임, 앵글, 클로즈업 등의 사진적 요소를 강조하거나, 추상미술로 귀결된 모더니즘회화와 마찬가지로 평면성과 추상성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모더니즘적 실천은 이미 1953년경부터 나타났으며, 1960년에 이르면 《제12회 사협전》에 추상사진들이 대거 출품될 정도로 새로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동안 사진사 담론에서는 1950년대를 소위 보수파의 ‘살롱사진’과 혁신파의 ‘생활주의사진’의 경쟁 시대로만 바라봤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두 부류의 사진과 함께 모더니즘사진이 공존하던 시대였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섹션1. 사진가 4인의 시선 : 임응식, 이형록, 한영수, 성두경

    섹션1. 사진가 4인의 시선 : 임응식, 이형록, 한영수, 성두경
    이 섹션에 소개되는 작가들은 이미 한국사진사에서 뚜렷한 업적과 성과를 거둔 인물들이다.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중심으로 생활주의 사진을 주창한 임응식을 비롯하여 리얼리즘을 새로운 사진의 노선으로 삼고 집단 창작을 시도한 신선회 회원인 이형록과 한영수, 그리고 대한사진예술가협회 및 한국사진작가단 소속 회원이면서 종군사진가로도 활약했던 성두경 등 모두 4명의 사진가들이다. 이들에 대한 사진사적 평가와 별도로, 기존의 작품들과 동시적으로 작업해온 모더니즘 경향의 사진들을 선별하여 ‘사진 매체’에 대한 그들의 시각과 실험들을 살펴본다.

    작품보기 +
  • 섹션2. 물질

    섹션2. 모더니즘사진의 다양한 실험과 경향들
    『한국화보(Pictorial Korea)』(1950년 제1호 발간)와 『사진문화』(1956년 창간)에 실린 사진작품 중 모더니즘 계열의 사진을 소개한다. 이 두 개의 출판물을 통해 각각 1950년대 전반기(1950-1957)와 후반기(1956-1959)에 활동한 사진가들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는데, 비록 이들의 작품은 인쇄사진의 형태로만 존재하지만, 1950년대 전 시기를 걸쳐 모더니즘 경향의 사진들이 다양한 사진가들에 의해 실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소개되는 사진가들은 김광석, 김기순, 이병삼, 이안순, 최계복 외에 박상용, 신상우, 유호석, 이낙선 등 이번에 새로 발굴된 사진가들까지 모두 9명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톤과 프레임, 앵글, 클로즈업, 그리고 추상성 등 사진의 형식적 요소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사진 매체의 독자성과 순수성을 찾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작품보기 +